작가의 프랙탈 이야기들

작가와 함께한 프랙탈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2009.10.31 00:04

프랙탈 이야기 2

조회 수 210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지난 글에서 프랙탈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중심으로 프랙탈아트 작품을 소개했다면 이번 글에는 좀더 프랙탈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랙탈이 수학적인 요소에서 출발하였으나, 최근 화려한 색과 현란한 모양으로 뭇 디지털 아티스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프랙탈을 이야기 하다 보면 자주 테셀레이션과 비교 질문을 받곤 한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이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유리창문의 창살 및 욕실이나 마루 바닥에 깔려 있는 타일과 같이 틈이나 교차점 없이 평면이나 공간을 도형으로 덮는 형태(모양)를 말한다. 대표적인 테셀레이션 작가로는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이다. 에셔는 수학적 소재라 할 수 있는 테셀레이션을 예술적 경지로 발전시켰다. 아래의 테셀레이션 그림이나(좌) 혹은 에셔의 작품을 무한대로 확대(Zoom In) 하다 보면 원래의 이미지나 도형은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자기 유사성을 가진 프랙탈(아래 작품 오른쪽)과는 다른 것이다. 프랙탈은 아래 프랙탈작품(우)에서 보듯이 무한히 확대해도 작은 소용돌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므로 이미지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2-1.jpg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많은 현상들을 보곤 한다.
주위에서 느끼는 이런 현상들 중에서 불규칙 적이고 무질서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무, 해안선, 구름, 산, 태풍, 돌개바람, 담배연기 등등 이런 것들은 자연현상 속에서 무질서한 현상 및 상태를 나타낸다. 이런 혼돈과 무질서는 인간의 지식으로 정의를 내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70년대부터 활발해진 이런 혼돈에 관한 연구가 Chaos 및 Fractal등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영국의 해안선 길이는 얼마일까? IBM의 토머스 왓슨(Thomas J. Watson)연구센터의 만델브로트(BenoitMandelbrot)는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으며, Fractal(프랙탈)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처음 그의 논문이 네이쳐지에 실렸을 때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다 한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프랙탈이 뜨거운 감자가 되자 그때서야 과학자들이 부랴부랴 만델브로트의 논문을 뒤지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논문(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에서 심오한 의문을 제기한다. "영국의 해안선 길이는 얼마나 될까?" 라는 것인데 이 넌센스 같은 질문은 그 후 많은 논문의 지침이 되기도 했다.

 

반지름 1인 원의 원주의 길이를 구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운 원주 공식(2Πr)을 적용하면 된다.
Π(파이) = 3.14159.... 이므로 2Πr는 대략 6.28이 된다.
영국의 해안선을 알기 위해서 같은 방법으로 아래의 그림과 같이 적용 할 수 있다.

 

1.gif

 

즉, 곡선의 길이를 잘게 쪼갠 직선의 길이의 합으로 가정하여 계산하는 방법은 측량기사가 지형도를 만들 때 사용하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절차다. 아래의 표를 자세히 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won.gif 

 

 

선을 많이 쪼갤수록 2Πr(6.28)에 가까워 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만델브로트가 제시안 영국의 해안선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프랙탈의 창시자는 IBM의 토머스 왓슨(Thomas J. Watson)연구센터의 만델브로트(Benoit Mandelbrot)이다. 그는 Fractal(프랙탈)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그는 논문 “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에서 프랙탈 인식에 관한 간단한 질문을 내놓았다. "영국의 해안선 길이는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은 언뜻 보기에는 넌센스 같지만, 이 단순한 질문은 실로 심오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면 만델브로트가 제시한 영국의 해안선은 얼마나 될까? 아래의 그림은 영국의 해안선을 200마일 단위와 25마일 단위로 잰 것이다. 25마일 단위로 재면 200마일로 단위로 잰 것에 비해서 측정된 해안선의 길이가 길어진다. 그 이유는 해안선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복잡하기 때문이다. 만일 더 작은 단위로 해안선을 재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1cm단위로 잰다면 어떨까? 아니, 원자 한 개 길이만한 자로 잰다면 어떨까?
2-2.jpg 
만일 1cm 길이의 측정단위를 사용하여 전 해안선을 기다시피 하며 세밀하게 측정 할 경우, 모든 해안가의 짧은 곡선, 해안 바위들의 굴곡 하나하나가 합산 되어 해안선 측정 값은 엄청나게 증가되어 천문학적인 수치가 나올 것이다.

3.gif

 

측정단위에 의해 합산된 곡선의 길이가 단위를 작게 할수록 무작위로 커진다면 그 곡선은 프랙탈 곡선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국의 해안선은 프랙탈이다. 이유는 영국의 해안선은 크고 작은 수많은 만, 내해, 작은 강, 복잡한 바위투성이들로 구성되어 매우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더욱 짧은 측정단위를 사용하면 구부러진 지형들에 깔끔하게 맞출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전체 길이는 증가하게 될 것이다. 원 모양의 곡선과 영국의 해안선과 같은 곡선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점은 곧 고전적인 기하 형태와 프랙탈 기하 형태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기에 첫째 명제가 제기된다. 영국의 해안선은 프랙털이다. 그래서 그 길이를 측정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프랙탈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 하는 것이다.

      4-1.gif

  

영국의 해안선이 프랙탈이라면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주위의 다른 곳에서도 프랙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름, 산, 나무, 심지어 사람의 뇌의 주름 등에도 프랙탈을 발견할 수 있다.

 

 

 

-계속- 

 

 

 

 

 

 

 

 

 

 

 

Facebook 댓글 


2009.10.30 23:30

프랙탈 이야기 1

조회 수 207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처음 프랙탈을 접하게 것은 1992~3년인듯 싶다. 프랙탈은 처음 수학에서 출발했지만 필자가 처음 접한 것은 환성적인 색과 화려한 모양의 프랙탈 작품이 먼저였다.

프랙탈이란? 물체를 아무리 크게 확대를 하거나 또는 무한대로 축소하여 현미경으로 들여다 정도로 세분한다 할지라도 본래 물체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프랙탈을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꼽는 것이 양치류이다. 양치류의 잎들은 각각 전체의 축소형이다. , 가까이에서 보는 형태가 멀리서 보이는 형태와 같다. 이는 프랙탈 프랙탈의 특성인 자기유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브로컬리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아래 왼쪽  사진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있는 양치류이다. 아래 사진과 같이 멀리서 보이는 전체의 이미지, 삼각형 형태가 잎에서도 원래 모양과 유사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음을 발견 있다 

1-1.jpg

번개.jpg

번개의 전파는 습도, 기온 및 기타 그 지역의 다양한 환경조건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번개의 경로가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옆의 사진을 통해 쉽게 번개 치는 보습을 볼 수 있는데 그 경로는 직선이 아니고 꾸불꾸불 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번개의 모습은 비 규칙적으로 진행하지만 자기와 유사한 가지치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모습은 불규칙하지만 전체모양은 가지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다.

 

 

 

 

나무.jpg또, 멀리서 바라보는 나무 모습은 옆 그림과 같이 나무 기둥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좀더 가까이 나무를 들여다보면 그 가지는 다시 더 작은 가지로 뻗어가고 그 가지는 다시 더 작은 가지로 뻗어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기 유사성을 통한 전형적인 프랙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듯 프랙탈은 끝없는 반복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세분화된 모양이 원래의 형태와 동일한 모양의 자기유사성을 갖게 됨을 말한다. 최근 이런 이론을 통하여 프랙탈이 “프랙탈 아트”라는 예술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이런 프랙탈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사람을 프랙탈 아티스트라고 한다.
필자가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번 작품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을 소재로 한 프랙탈 작품들이다.

 

 

 

 

줄리아집합.jpg

옆의 푸른색 그림은 줄리아 집합(Julia set)이라고 하는 유명한 프랙탈이다.
이 그림을 멀리서 바라보게 되면 반복되는 소용돌이 형상 내부에 다른 소용돌이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그림을 가까이서 들여다 본다면 프린터가 인쇄할 수 있는 한계까지 더욱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무한히 반복되는 형상을 유한한 공간상에 축소해 놓은 것일 뿐 전부는 아니다. 구체적으로 정의를 하자면, 프랙탈은 스스로를 계속 축소 복제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성질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반복 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세분화된 모양은 원래의 형태와 동일한 자기 유사성을 갖는다. 

 

 

 

 

 

-계속- 

 

  

 

-참고-

 

프랙탈이란

프랑스의 수학자인 만델브로트Mandelbrot는 1967년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영국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선의 총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넌센스같은 질문은 매우 심오하고 오묘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글에서 만델브로트는 영국의 해안선의 길이는 어떤 자로 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Cm 단위의 자로 재었을때와 1m 단위의 자로 재었을때는 둘래의 길이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나게된다.

70년대 중반 프랙탈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만델브로트의 논문을 실렸던 '사이언스'지를 뒤적거리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Facebook 댓글 


2009.10.31 00:24

프랙탈 이야기 3

조회 수 1970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자연속에 나타나는 프랙탈들..

앞에서 만델브로트가 제시안 영국의 해안선이 프랙탈이라면 우리 주위의 다른곳에서도 프랙탈을 찾을 수 있까? 해답은 자명하다.. 프랙탈은 우리 주의의 모든곳에서 찾을 수있다. 앞에서 정의-1 과 같이 곡선의 길이가 단위를 작게 할수록 무작위로 커진다면 그것은 프랙탈이라고 정의했다.(프랙탈 이야기-2 참조)

 

필자가 앞 글에서 언급했지만 프랙탈 특징을 이야기 하다 보면 항상 자기유사성(Self-similar)에 관하여 논하게 된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반적으로 자기 유사한 물체는 프랙탈이라고 하지만, 모든 프랙탈에 자기유사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프랙탈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불규칙성에 의해 정의되지만, 이러한 불규칙성이 꼭 동일하게 보일 필요는 없다.

 

 

5-1.gif

5.jpg 

위의 사진 왼쪽은 달 표면에 남긴 발자국이라는 유명한 사진이다.
발자국 주변은 자갈이나 돌들로 인해 울퉁불퉁하고 불규칙적으로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달에서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인데, 아마 많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사진 또한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나타나는 유명한 사진중의 하나다. 자 그럼 두 사진을 보자. 지구를 바라보는 사진 속 달의 모습과 발자국이 찍힌 달 표면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위의 왼쪽사진에서 발자국만 없다면 달의 표면과 그리 다를 것이 없다. 따라서 달도 프랙탈이다.

우리는 이전 글에서 프랙탈의 작은 부분이 전체와 유사한 것을 프랙탈의 자기유사성이라 했다. 그러나, 달표면을 비교한 두 장의 사진에서 관찰했듯이 모두 프랙탈의 불규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프랙탈 차원은 멀리서 본 달 표면보다 가까이서 본 발자국 사진에서 더 높게 보인다.

 

 

- 계속 -

 

 

 

Facebook 댓글 


2009.10.31 00:29

프랙탈 이야기 4

조회 수 1899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그럼 우리주위에서 프랙탈을 찾자보자..

 

[산]

산도 프랙탈이다.

멀리 보이는 산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을 보노라면.. 모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깊이 들여다 보면... 험준한산이거나 아님은 그렇지 않거나 하는 정도지.. 모양은 다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바로 산도 프랙탈이다.

 

정상에 올라서서 바로 앞에 보이는 언덕까지 2~3시간정도면 갈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보면 험준한 개곡과 협곡들을 지나다보면 하루종일 걸릴수도 있다. 길은 곧아지고 기차나 비행기 항로등은 더욱 짧은 거리를 질주하고.. 옛날과 같이 굽이굽이 자연의 프랙탈을 밟아가던 자연과의 일체감에서 현대인들은 더욱 멀리 벗어나고 있는 지금... 산을 오르는 재미는 프랙탈 차원의 면들을 밟아가므로서 부분적으로나마 태초의 혼돈과 자연이 주는 프랙탈을 본능으로 인지하여, 자연으로부터 온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재미가 아닌가? 한가지 생각해야될것이다. 프랙탈의 특징을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자기유사성(Self-similar)에 관하여 논한다. 본인도 앞의 프랙탈이야기-1에서 언급했지만... 일반적으로 자기유사한 물체는 프랙탈이라고 하지만, 모든 프랙탈이 자기유사하지는 않음을 알아야한다. 프랙탈은 모든 범위에 존재하는 불규칙성에 의해 정의되지만, 이러한 불규칙성이 꼭 동일하게 보일 필요는 없다.

 

[구름]

구름도 산과같이 프랙털의 신비한 예가 될 수 있다.
비행기안 창측에 앉아서 구름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는 프랙탈을 연구하는 일 일것이다. 어떻게 구름도 프랙탈이 될 수 있을까? 구름도 앞에서 언급한 산과 같이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프랙탈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호수의 표면]

호수의 대부분의 표면은 잔잔하다.
바람부는 날에는 잔잔한 부분이 작아지고 고요한 날엔 커진다. 최근까지 호수면에 일어난 잔잔한 파문은 일정한 형태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유체의 복잡한 운동의 하나인 와류(Turbulence)에 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이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바람부는 날 물표면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해 봄으로써 파문의 형태가 균일한 것이 아님을 찾아 낼 수 있다. 호수의 표면을 가까이서 들여다 볼때 매끈한 면과 거친 면이 연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지극히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잔잔함과 거침이 혼합되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프랙탈임을 알 수 있다.

 

[날씨]
만일 나이아가라 폭포위에서 하나의 작은 나무잎을 폭포에 띄운다면 몇 분 후 폭포 아래로 떨어진 잎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물음에 아무리 고도의 과학으로 슈퍼컴퓨터를 동원하여 예측을 한다손 치더라도 정확한 답을 예측하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날씨가 바로 그렇다. 강력하고 복잡한 슈퍼컴퓨터로 일기예보을 예측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이것은 컴퓨터의 오작동도 아니고, 수학적 알고리즘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날씨에 관계하는 역학적인 구도가 혼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앞에서 언급한 폭포 밑으로 떨어진 작은 나뭇잎의 위치를 예즉하는 것과도 같다. 날씨는 동역학계의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에 출렁거리는 호수 위의 고요한 파문은 지구뒷편으로 전달하여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일이다. 즉 카오스 이론의 모태가된 유명한 나비효과(베이징에서 나비 한마리가 날개를 퍼덕임으로써 뉴욕에 폭풍우가 몰아칠 수 있다) 이다.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일기예보를 시청했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전선을 동반하고 동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거대한 저기압대들이나 걸프만의 허리케인은 항시 존재한다. 일기에 관한 위성사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들 중 하나다. 이 위성사진들은 혼돈(Chaos) 일기 역학의 그래픽적인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서 프랙탈에 이르는 또다른 경로 혼돈에 관하여 논하게 됬다.

정의 :
동역학계(Dynamic System)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부분들의 집합이다. 계통 내부의 초기 조건상의 변화가 후에 계통상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는 동역하계는 혼돈이라 한다.

프랙탈의 특징들
       - 분리된 차원(Fractional Dimension)

       - 모든 영역에서의 복잡한 구조(Complex Structure at all Scales)

       - 무한정한 가지치기(Infinite Branching) -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

       - 혼돈 역학(Chaotic Dynamics) 그러나, 이런 특징들이 모든 프랙탈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

 

 

 

Facebook 댓글 


조회 수 1298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프랙탈 크리스마스트리를 출품하여 제5회 경향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네요~^^

미술대전에서 디지털아트로 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미술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림그리기(?) 만을 연상이되곤 하지만..

그래도 컴퓨터로 만든 작품이 당선됬다는것에 고무적이네요^^ 미술대전에 몇번 출품했지만... 수상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시대가 조금 변화된듯하네요~

디지털아트도 한국 예술계에서 확실하게 자리잡는 그날까지..~~ ^^

 

 

크리스마스트리.JPG

 

 

 

 

 

Facebook 댓글 


2010.04.19 22:37

로이 애스콧 Interview

조회 수 901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이버네틱스의 창조적 생명성을 찾아”

당신은 60년대부터 ‘사이버네틱스’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즈음과 그 후의 활동에 대하여 묻고 싶다.

60년대에 예술계의 관심은 플럭서스와 퍼포먼스 등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것은 일종의 상호작용성에의 관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학생이었고 후기인상파인 세잔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이동하는 시점과 자연 속의 유전(流轉)과 같은 주제에 탐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세잔의 구도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유전하고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감상자측인 것이다. 또한 그 시기에 나는 F. H. 조지의 이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로잔 브래트의 ‘인지(認知)’라는 발상에 근거해 신경망의 극히 초기적 구상을 바탕으로 뇌의 모델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전개했다. 이 이론은 그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사이버네틱스라는 과학의 존재를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 일생에 몇 번 있을까말까 한 영감을 얻고, 예술 발전의 기초가 될 씨앗으로서의 이론적인 근거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그후 나는 사이버네틱스의 모든 영역에 뛰어들어 참가와 인터액션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내가 60년대에 관심을 가졌던 사이버네틱스가 실제로는 거의 미개척 분야였던 것처럼, 바이오 텔레마틱이나 나노테크놀러지, 모이스트 미디어, 그리고 재물질화와 같은 영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젊은 세대가 활동하게 될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한다.

그후에 당신이 기획한 <텍스트의 주름>(1983)과 <가이아의 양상〉(1989)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디어는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80년대에 들어 <Terminal Consciousness>에 참여한 뒤, F. 포페르로가 기획한 <엘렉트라>에서 작품제작을 제의받았다. 프로젝트의 타이틀인 ‘텍스트의 주름’은 롤랑 바르트에서 유래한다. 즉, 바르트가 말한 ‘텍스트의 쾌락=pleasure’로부터 ‘텍스트의 주름=plissure’에 도달하게 된 것인데, 중요한 점은 내가 60년대로 되돌아가서 예술작품에 있어 감상자는 예술가와 동등한 위치를 점하며, 감상자와 작품의 상호작용만이 의미를 생성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투입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전세계에 작가를 배분하고, 전지구적인 동화를 만들어내고자 시도했다.

인터페이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답이 된 것은 1989년의 <아르스 엘렉트로니카>에서의 시도였다. 곡선 형태의 건물과 화단 밑의 터널이라는 공간을 사용하여 <가이아의 양상>이라는 프로젝트를 행하였다. 테마는 시공간의 만곡과 가이아(GAIA), 즉 대지의 여신이다. 나는 먼저 전세계의 1백명 이상의 예술가·시인·과학자·샤먼·음악가·건축가·호주 원주민·미국 인디언 예술가들에게 지구에 관한 화상이나 텍스트·시를 보내줄 것을 의뢰했다.

이 행사에 마련된 인터페이스는 2종류였다. 하나는 전시회장의 2층에 수평으로 늘어선 일련의 스크린으로, 관객들은 마치 대지를 내려보듯이 그것들을 볼 수 있었다. 스크린에는 네트워크로부터 내려받은 화상이 투영되고, 관객은 마우스를 이용해서 그 화상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목소리에 반응하는 노이즈 센서를 이용해서 화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우리는 전부 수작업으로 화상을 보내거나 지우고, 변조된 화상을 원래의 것으로 되돌려 주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인터페이스는 ‘가이아의 자궁’이라고 불리는 데이터 터널이었는데, 건물의 화단 밑에 철도의 선로를 깔고, 관객은 정신과 의사가 사용하는 긴 의자에 환자처럼 누워서 암흑 속을 이동하는 것이었다. 관객들에게는 40개의 전광판에 시와 정치적인 텍스트가 스크롤되는 것이 보인다. 말하자면 그들은 전세계에서 보내오는 갖가지 텍스트 속을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지구적 네트워크를 통하여 주고받는 정보의 통합체가 또 하나의 생명체라는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이: 20세기에 들어 과학과 테크놀러지는 예술을 혁신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당신은 이를 통하여 예술의 컨텐츠의 성격과 내용까지 변하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테크놀러지의 발전과 관련해서 예술의 미래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애스콧: 테크놀러지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환경이다. 또한 테크놀러지는 욕망에서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강요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텔레파시로 의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 늘 지녀오던 것이었다. 고대문명이나 현대의, 예를 들면 브라질의 샤먼도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텔레프레젠스를 송신할 뿐만 아니라 가상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결코 아전인수격의 설명이 아니다. 모든 것은 욕망의 표현인 것이다. 오늘날에 스크린 위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 인공생명을 내포한 실리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매체는 변화하고 있고 환경 또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정신, 즉 무엇인가를 실현 혹은 이해하고 스스로 변용하고자 하는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20세기 디지털 아트의 흐름을 개관할 때, 그 기원은 오히려 뒤샹이나 마리네티와 같은 사람들의 고유한 의미와 접근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예술가는 극히 광범위한 갖가지 전략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거기에는 3개의 기본적인 미학적인 좌표가 있다. 그중 하나는 테크노에틱스인데, 이것은 의식의 테크놀러지와 내가 사이버셉션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인공생명, 이것은 자연의 창발(創發)과정을 적용하는 모든 것, 마투라나와 발레라가 오토포에시스라고 부르는 과정의 모든 구체적인 예를 포함한다.

세 번째로 인텔리전트 건축, 즉 적응과 예측을 행할 수 있는 인공의식을 지닌 환경시스템 내지 구조에 관련된 모든 것, 이것들은 첨단 과학의 연구에도 중심이 되는 문제다. 거기에는 의식의 문제가 모든 측면에서 중요성을 획득하고 있다.

예술에 있어 과학적인 은유의 가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

금세기의 서양예술은 테크노에틱 문화에의 길을 구축해 왔다. 뒤샹의 아이러니한 과학만능주의로부터, 타틀린의 공학적 낙관주의,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기술적인 역동주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예술의 근저를 이루는 창조행위의 대부분에서 과학적 은유에 대한 찬미와 테크놀러지의 잠재력에 대한 신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있어서 컴퓨터 과학과 첨단기술이 예술의 실천에 가져온 충격이나, 양자물리학 또는 사이버네틱스의 은유가 예술이론이나 문화 이해에 끼친 영향은 재삼 거론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 현재 테크놀러지 자체가 생물공학이나 생체전자공학과 같은 생물학에의 지향성을 강화해감에 따라, 예술 또한 스스로 발생이나 공진화(共進化) 혹은 오토포에시스의 문제를 내포하게 되었다.

인공생명에 있어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생명은,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진 콘텍스트로 대치될 수 있는 형태로 파악된다. 거기서 생명이란 조직화된 물질의 특성이기보다는, 물질의 조직화 그 자체의 특성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인공생명의 핵심이 되는 개념은 창발적인 몸짓 (behavior) 이다. 자연의 생명은 방대한 양의 무생명체인 분자가 행하는 조직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창발한다.

C.랭턴에 의하면, 거기에 전체적인 컨트롤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부분의 ‘몸짓’ 전체에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부분이 ‘몸짓’ 그 자체이며, 개개의 ‘몸짓’의 국소적인 상호작용의 전체로부터 창발되는 몸짓이 바로 생명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으로서의 인공생명과 상호작용적 예술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어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샤머니즘적 의미론과 ‘벌레구멍’의 은유에 대하여 말해달라.

고대의 무당은 일종의 의식의 벌레구멍을 통하여 공간과 시간의 장벽을 마음대로 넘어다닐 수 있었다. 이 은유는 고대 샤머니즘 전통에서의 예술의 기원을 오늘날 인터넷에 있어서의 예술 내지 미래의 시공 항해에서의 예술과 연결지을 것이다. 텔레마틱한 링크 내지 인터넷과 같은 하이퍼 미디어에 있어서 현대의 우리들은 벌레구멍을 통하여 갖가지 사이트나 노드(node, 매듭·파절·중심점)로 간편하게 드나들 수 있고, 이미지나 텍스트·장소나 사람들 사이를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벌레구멍이란, 양자(量子)의 껍질(막)을 관통하는 터널이며, 공간의 토폴로지에 있어 아득히 떨어진 우주공간의 두 장소를 이어주고, 또 다른 조작을 하면 하나의 은하계에서 다른 은하계로, 혹은 현실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사람이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양자의 껍질을 관통하는 터널’이란 이론적인 가설일 뿐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웹(web)에 있어서 내가 데이터의 껍질이라고 부르고 있는 터널을 통하여 하이퍼 링크된 하나의 층에서 다른 층으로, 하나의 텔레프레젠스에서 다른 하나로 이동하는 것, 나아가서는 한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이동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벌레구멍과 같은 터널을 통한 이동은 거시적인 우주와 미시적인 의식이라는 두 개의 레벨에 있어 ‘몸짓’을 동시에 기술할 수 있는 은유라고 생각된다.

 

 

이원곤

Facebook 댓글 


조회 수 76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1999년 12월 월간미술 뉴 밀레니엄 특별기획에 기고된 심광현교수의 전문 내용입니다.

 

 

 

art1999.jpg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출품한 이후, 20세기 미술은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려는 노력으로 일관해 왔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비평과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게 된 일련의 흐름은 새로운 비평 영역의 확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세기의 전환을 앞둔 지금, 모더니즘은 포스트 모더니즘·후기 구조주의에 자신의 공백을 내어놓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조 역시 모더니즘의 공백을 채우지는 못하였다.

 


비평의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비평적 행위다.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대신 행위의 ‘대상’에 대한 반성과, 반성의 근거와 방법 자체를 문제삼는다는 데에, 말하자면 어떤 행위와 행위의 대상을 ‘메타화’한다는 데에 비평적  행위의 특징이 있다면, 미술비평의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메타화’ 방식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반성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 미술비평의 역사를 반성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 나타나는 어려움의 하나는 20세기 미술의 역사 자체가 이미 이와 같은 ‘메타화’방식의 역사였다는 점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출품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이래 20세기 미술의 역사는, 합의된 ‘미술작품’의 개념을 전제했던 과거 미술의 역사와는 달리 ‘매번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려는 노력들’의 역사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창작 행위의 주안점이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한다”데에 놓여 있다면, 창작과 비평의 전통적인 관계가 해체되고 창작 자체가 매번 일련의 비평 행위가 된다.

20세기 미술에는 미술작품은 없고 미술에 관한 담론(painted word)만이 무성하다는 비판(톰 울프)은 이로 인해 나타나는 불편함을 지시하는 것이지만, 이런 현상은 역으로 ‘비평 영역의 확장’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확장된 의미에서의 비평에는 ‘미술행위에 대한 비평’만이 아니라 ‘비평적 행위로서의 미술’이 함께 포함될 수 밖에 없고, 바로 이런 지점에 주목할 때라야 20세기 미술비평이 그 이전과 구별되는 중요한 분수령이 포착되지 않을까 싶다.

뒤샹이 제기했던 바와 같은 ‘비평적 행위로서의 미술’이 골치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미술을 대할 때, 통상은 문제시 되지 않았던 ‘미술작품’의 개념이 곧바로 문제시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술을 ‘감상’하려는 사람에게 “당신이 감상하려는 미술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함으로써 ‘감상’이라는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뒤흔들어 놓는다. 이것은 주어진 문제를 풀려고 공식을 찾는 사람에게 문제란 무엇인가를 되물음으로써 ‘공식’의 중요성을 해체하는 것과 비슷하며, 문제를 ‘푸는’행위의 의미를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의 맥락 속에 재배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1962년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문제 ‘풀이’행위의 암묵적 기반이 되고 있는 문제 ‘제기’의 맥락적 배치를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로 개념화시킴으로써 이런 메커니즘을 ‘명시화’한 바 있다.

비교하자면 ‘비평적 행위로서의 미술’은 문제 ‘풀이’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전제되었던 ‘패러다임’의 구조를 드러내는 행위에 상당한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로잘린 크라우스가 <조각 영역의 확장>이라는 글을 통해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황에서의 제작이란 제한된 매체-조각이라는 것-에 관련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련의 문화적 개념에 의한 논리적 운영”에 연관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마르셀 뒤샹의 문제 제기를 60여 년이 지나 개념적으로 명시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포스트 모더니즘적 제작의 초점은 매체나 표현 양식의 수준(문제 풀이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문제 제기) 수준에 놓여 있다는 것인데, 이를 매체 수준에서 바라보는 것은 마치 뒤샹의 ‘변기’자체의 작품성과 미학적 특질을 감상하려는 것과 같은 ‘오해’를 유발할 뿐이다.

행동주의 - 소통·참여의 과정

모더니즘이 매체의 순수한 물질성과 형식성을 중심으로 닫혀진 미술작품의 개념을 전제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이 문제삼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이 닫혀진 미술작품의 개념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은 매체에서 ‘장’(field)의 차원으로 비평의 초점을 이동시킴으로써 모더니즘 비평이 혼란스러운 절충주의라고 매도했던 많은 작업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열린 공간이 사실상 절충주의의 ‘합리화’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비평적 기준이 새롭게 마련될 수 있는가? 매체(의 물질성과 형식성) 중심의 패러다임의 붕괴를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논리적 운영의 기준은 무엇인가?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 비평은 이런 기준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패러다임 논쟁에서 엇나가는 또 다른 축이 존재한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적 미술, 행동주의 미술과 연계된 비평적 쟁점이 그것이다. 때때로 이 쟁점은 ‘리얼리즘’과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정치적 미술, 행동주의 미술의 오랜 전통은 장르적·매체적 기준에 의해 한정된 양식적 의미에서의 ‘리얼리즘’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20년대의 하트필드식, 60년대의 팝아트적인 ‘정치적 모더니즘’을 환기해 보라).

미국의 대표적인 행동주의적 페미니스트 비평가인 루시 리파드나 영국의 존 A. 워커와 같이 정치적 미술을 옹호하는 비평가들의 작업이 초점을 두는 지점은, 특정 매체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미학적 효과를 중시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중시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소통의 일부로 작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이들은 정치적 미술, 또는 행동주의 미술의 본질은 특정 장르나 매체의 관습이나 양식에 한정된 닫힌 작품 개념이 아니라, ‘소통하고 참여하며 함께 구성해가는 과정으로서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70년대부터 페미니스트 행동주의자이자로서 다수의 이벤트들을 기획해왔던 수잔 레이시는 95년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라는 제목의 책을 편집하면서, 지난 30여 년간의 행동주의적 미술의 성과를 기존의 제도 공간에서 행해진 환경 조형물로서의 ‘공공 미술’과 구분하기 위해 ‘새로운 장르 공공 미술’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녀에 의하면 이 개념은 관객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쟁점들을 가지고 관객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기 위해 전통적인 매체와 새로운 매체 양자 모두를 사용하는 참여적인 시각예술을 총칭한다.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는 작가는 사적 체험의 경험자이자 리포터로서, 또는 분석가이자 행동주의자로서 다양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관객 역시 능동적인 참여자에서부터 역사적인 회상자에 이르는 다양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인 매체의 경계로부터 벗어난 미술을 지칭하기 위해 60년대 후반부터 사용된 ‘새로운 장르’라는 개념과, 내재적으로 사회적인 ‘개입’의 성격을 지닌 ‘공공 미술’개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개념은 위에서 말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개방한 ‘열린 작품’의 다원적 공간에 일련의 방향성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글로벌·로컬의 이중화

20세기 서양의 미술과 미술비평이 실제로 어떤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는가의 문제와, 우리가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응용했는가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서양에서는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 정치적/행동주의 미술의 상이한 패러다임들이 비록 앞의 두 축의 지배적 우위 하에서이긴 하나 경쟁적이거나 상호 침투적·접합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반면, 우리의 경우는 1920∼30년대의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오랫동안 정치적 미술의 패러다임은 서구미술 및 미술비평의 수용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배제되었고, 3자의 역동적인 관계는 거의 조망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양미술 수용사에 대한 반성이 시작되고, 정치적/ 행동주의 미술의 패러다임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기 시작된 것은 80년대 초기 민중미술운동의 발화를 계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의 격렬했던 정치적 상황은 초기에 최민·성완경 같은 비평가들이 주목했던 정치적/행동주의 미술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가능성들을 문화적인 맥락에서 치밀하게 검토할 반성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고, 80년대 말에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NLPDR) 논쟁의 과도한 영향 속에서 도식적인 리얼리즘 양식론의 문제가 지나치게 부각됨으로써 비평적 초점이 패러다임 수준에서 매체와 장르 중심의 닫힌 작품 개념의 수준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슷한 시기에 소위 ‘제도권’의 일부 미술비평가들 사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수용이 이루어졌지만, 이 역시 문화적 개념들의 논리적 운영이라는 차원보다는 양식상의 비교 수준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철저한 오독을 야기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세기 서양의 미술사와 미술비평의 입체적인 궤적이 파악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이며, 이 과정에서 ‘패러다임’‘담론적 배치’‘문화적 개념들의 논리적 운영’과 같은 수준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개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9년에 결성되었다가 93년 초에 해체한 미술비평연구회의 활동에서 이와 같은 80∼90년대로의 이행기의 한계와 성과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미술행위의 문화정치적 차원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페미니즘과 문화 연구, 후기 구조주의 철학 등의 수용 과정에서 가속화되었지만, 이런 인식의 세련화는 논쟁적 열기를 수반하지는 못했고, 다만 도시·대중매체·섹슈얼리티·젠더·에콜로지 등을 주제로 한 일련의 기획전시회들을 통해 소단위별로 분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서 95년 광주 국제 비엔날레의 개시를 전후로 국제 교류가 활성화되는 가운데 서서히 부각되고 있는 쟁점의 하나가 ‘글로벌/로컬’((global/local)의 이중화 문제다.

위와 같은 기술이 20세기 미술비평의 국내외적 흐름의 전모를 조망해줄 수는 없다. 여기서는 다만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20세기 초·중반까지 서구미술을 이끌어온 모더니즘 패러다임은 지배적인 미술제도의 틀 안과 밖에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정치적/행동주의의 지속적인 공격을 통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나아가 정치적/행동주의 미술의 전통은 본래가 매체가 아니라 ‘참여와 소통’이라는 문화적 맥락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미술=리얼리즘 양식’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해야 한다.

둘째, 철저하게 사적인 경험과 닫힌 작품 개념에 기반했던 모더니즘 패러다임의 붕괴로 나타난 공백을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의 개인주의 문화로 채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탈중심적이고 복수적이면서도 네크워크식으로 연결되는 공생체적인)의 문화적 공공 영역을 가능케 하는 계기로 활용할 것인가의 여부다. 포스트 모더니즘·포스트 구조주의가 답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며, 바로 여기서 창조적인 역할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Facebook 댓글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